밀양에서 한 여름 밤의 꿈이 무르익다

[특별기고]

가 -가 +sns공유 더보기

손경찬(본지 대표․전 경북도의원)
기사입력 2009-08-07 [08:25]


밀양의 여름밤은 뜨거웠다. 더위로 인한 것이 아니다. 매년 7월 중순에서 8월초까지 밀양연극제가 개최되는 시기에는 밀양시민들뿐만 아니라 가까이 부산과 울산이나 대구, 창원, 마산, 경주 포항, 심지어 서울에서도 KTX를 타고서 밀려온다.

밀양의 춤꾼 하용부 씨가 1999년 한적한 폐교였던 월산초등학교 부지에 터를 잡고 문화예술의 본거지로서 연극촌장을 맡아온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지방이 마찬가지지만 문화도시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곳에 오직 살아있는 예술혼으로 신명을 바쳐 오늘날의 지방도시 가운데 이름난 연극도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2000년 연극촌 내 숲의 극장을 개관하면서 시작된 밀양연극촌 주말극장은 매주 토요일 연희단거리패의 신작 공연과 레퍼토리로 선보이는 무대로 밀양은 영남권의 문화명소로 자리잡았다.

지난 7월 23일부터 시작되어 8월2일까지 11일간 밀양 여름 공연예술축제는 모두 끝이 났다. 올해도 대 성황리에 연극제가 막을 내렸지만 그 열기는 아직 관중들과 밀양시민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8월 1일과 2일에 펼쳐지는 마지막 공연으로 밀양출신의 원로 연극인 손숙 배우가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도록 계획되어 있어 나는 일찌감치 밀양에 내려가서 급한 볼 일을 보고 저녁 무렵 손숙 배



우와 친구인 하용부 밀양예술촌장과 함께 영남루를 찾았다.

워낙 바삐 다니다보니 근래에 영남루에 오른 것은 오래간만의 일이다. 사료에 의하면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루이며, 누각에 올라 바라보는 풍광은 조선 16경중의 하나로 널리 손꼽혀져 왔던 곳이다.

영남루를 빠져나와서 저녁식사를 간단히 하고 연극촌으로 향했다. 시내거리마다 밀양축제 여름공연예술을 알리는 홍보깃발이 펄럭이며 밀



양이 지방도시로서 연극 대표 도시임을 자랑스럽게 알리고 있었다.

공연시간은 밤 10시였는데 공연시작 2시간 전부터 관중들이 밀려오기 시작하여 좌석 840석은 순식간에 동이 났고, 통로자리 등을 합해 1,600석이 모두 만석되었으니 올해 밀양연극제 마지막 작품으로서 중량감 있는 이윤택 연출의 ‘어머니’ 작품은 인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밀양 연극촌이 만들어진지 10년이 되었고 어머니 작품도 10년째를 맞이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이미 ‘어머니’ 공연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본인도 이 작품은 이미 여러 차례 보았지만 볼수록 종전에 우리 어머니들이 살아온 인생의 의미를 느끼면서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본인의 입



장에서도 가슴 깊이 남는 애달픈 이름의 어머니다.

드디어 무대가 열리고 연극의 주인공 황일순(손숙 분)은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인 ‘창국이 아부지’(하용부 분)가 집으로 찾아와서 함께 가자는 것을 지금은 못 따라 나서지만 ‘입동 전에는 갈라오’라고 하는 것으로 연극은 시작되었다.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아 부자 몇 명 빼고는 누구든지 배고팠던 시절의 이야기는 그저 밥 먹고 사는 게 제일로 행복한 시절이었다. 글자마저 못 깨친 주인공 창국이 엄마는 그 시절에 논 세마지기 값에 팔려간 곰탱이처럼 살았고, 바보처럼 살아왔던 우리들 여인네들의 푸념이자 한스런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집집마다 신주단지가 있었는데 이것은 슬프고 괴롭고 어려웠던 시절을 하소연하는 여자들의 인생이고 역사였던 것이다. 여자 주인공은 가정보다는 바깥으로 사도는 남편을 차라리 잊고서 아들을 위해 온갖 고생을 하다가 먹을 것이 없어 맏이가 염병에 걸려 잃고 마는데



그 이후 맏이를 가슴에 묻고 살았다.

그녀가 공민학교에라도 다녀 글자라도 깨우쳤다면 그녀의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가부장제 하에서 아버지에게 순종하여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는 입장 그 자체가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져 힘든 생활이 예고되지만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영낙없는 오늘날의 어머니상이다.

극이 전개되면서 배우들의 열연으로 지루한 감이 전혀 없다. 또한 중간 중간에 노래 ‘알뜰한 당신’이나 ‘열일곱 살이에요’ 등이 나오면서 흥을 내게 만들고 배우들이 뱉어내는 말들도 재미를 더한다.

그리고 마지막 여주인공인 황일순이 손자로부터 배운 한글로 이름을 쓰면서 ‘나도 이제 이름 석자를 남기고 갈라오. 나도 인제 글 배웠소…’라는 말을 남기고 첫 장면에서 나왔던 남편을 따라 가는 게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중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고 환호를 했다. 황일순(손숙 분)을 비롯한 창국이 아부지(하용오 분) 등 출연진이 모두 나온 가운데 손숙 원로배우가 인사를 했는데 그녀의 고향이 밀양이라 말하면서 고향의 분들께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그간의 숱한 외로움 속에서도 고향의 산과 강을 그리며 살아왔는데 그것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큰 힘이 되었다”고 하면서 마지막 연극인생을 작품 ‘어머니’와 함께 하겠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올해 밀양 축제는 끝이 났지만 밀양이 오늘의 연극도시로 오기까지 하용부 연극촌장의 끈질긴 집념과 함께 이 지역 출신 원로인 손숙 배우의 힘이 컸음과 또한 밀양시의 전폭적인 지지의 결과였으니 예술은 예술인의 혼이 담겨져야 한다는 말이 한여름 밤, 무르익는 밀양의 꿈을 대변하고 있었다.



손경찬(본지 대표․전 경북도의원)의 다른기사보기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울진타임즈. All rights reserved.